[글마당] 춤추는 영혼
오랜 세월 크루즈를 타면서 단 한 번도 밴드가 연주하는 밤에 춤추러 가지 않았다. 남편이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꺼리고 춤추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배에서 내릴 때마다 내가 그리도 좋아하는 춤을 추지 못한 것을 후회하다가 한이 되었다. “이번에는 꽤 오래 배 안에 있어야 하니까 밤무대에서 춤을 꼭 춰야겠어. 나 춤추러 가는 것 말리지 말고 케빈에서 자고 있어.” “알았어. 마누라 하고 싶은 대로 해.” 남편도 나의 춤 사랑에 지쳤는지 흔쾌히 허락해 줬다. 나흘째 되는 날 큰맘 먹고 추러 갔다. 모두가 부부들이 왔다. 나만 혼자다. 연주가 시작된 지 15분쯤 후, 한 여자가 그녀보다 마른 남편을 끌어내어 추기 시작했다. 배 둘레가 키보다 더 굵었지만, 통통한 몸매로 잘도 흔들었다. 흥이 많은 와이프를 위해 마지못해 끌려나가 쑥스럽다는 듯 흔들며 그만 추었으면 하는 표정이다. 여자는 흥에 겨워 벌어진 입으로 남편에게 뭐라고 지껄이며 잘도 흔들었다. 갑자기 춤추는 여자만큼이나 통통한 여자가 내 옆자리에 앉아도 되냐고 물었다. 나를 자꾸 쳐다보며 웃었다. 쳐다보는 눈초리가 예사 눈빛이 아니다. ‘혹시 레즈비언은 아니겠지?’ 비슷한 경험이 한번 있었기 때문이다. 작은 밴드가 연주하는 리버사이드 공원에서 내 옆에 앉아 있던 뚱뚱한 브라운 피부의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를 여자가 자꾸 나를 흘끔흘끔 쳐다봤다. 나도 웃음으로 인사했다. “이 동네 살아요?” “네 당신은?”으로 시작한 대화가 점점 이상한 분위기로 흘러갔다. 레즈비언 파트너를 찾는다는 직감에 먼저 가겠다고 일어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크루즈 춤으로 돌아가서 내 오해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때의 브라운 여자와 내 옆자리에 앉은 여자의 눈빛이 같다는 느낌이 들어 몸을 움츠렸다.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추워요?” “약간” 그녀의 물음에 내가 대답하자 “그럼 우리 나가서 춤출래요?” 춤추고 싶어 하던 나는 벌떡 일어나 그녀와 함께 무대로 나가 추기 시작했다. 다른 키 큰 여자도 합세했다. 그리고 이어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나와 흔들었다. 밴드도 신나는 춤곡을 마구 연주하고 가수는 목청을 높였다. 우리는 음악이 끝나도 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 췄다. “우리 그만 자리에 들어갈까?” 그녀가 헐떡이며 나에게 물었다. “나는 더 출래요.” 대답했더니 “그럼 한 곡만 더 추고 들어가지요.” 처음엔 신나서 추더니 힘든가 보다. 우리는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내가 물었다. “혼자 배 탔어요?” “아니. 남편은 피곤하다고 자요.” “내 남편도 지금 자고 있어요. 밥 먹을 때만 나와요. 나는 싱글처럼 혼자 돌아다녀요. 우리 내일 또 함께 출까요?” “글쎄 내일은 잘 모르겠는데.” 예상을 뒤엎는 그녀의 대답에 실망했지만, 내일은 나 혼자 서러도 흔들어야겠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영혼 브라운 여자 레즈비언 파트너 세월 크루즈